기사상단

기획특집;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장과의 대담

내 종교보다 타 종교 이해와 화합이 중요

가 -가 +

테스트
기사입력 2013-08-14 [16:34]


기획특집●종교지도자와의 對談







대담자: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회회 회장(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이옥용(인터넷 매일종교신문․ 범종교신문 발행인)

대담진행 및 사회: 배영기 논설위원(숭의여대 명예교수)

일시 및 장소: 7월 30일 서울 면목동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사무실

사진=황광현 사진전문기자



“모든 종교에 道가 있다.

사랑을 파는 종교에서 사랑을 나눠주는 종교가 되야 한다”

-邪敎視되었던 민족종교가 정신이 지배하는 세계 회복의 중심에 선다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은 3시간 가량 이어진 대담과 식사시간 동안 9순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버섯 없는 맑은 혈색으로 기운차고 논리정연한 말을 이끌어나갔다. 한 회장은 ‘과로(過勞) 과민(過敏) 과식(過食)을 피하며 아침마다 도인체조를 하는 것이 건강 비결’이라 하지만 그의 종교적 수양과 열정적 활동이야말로 심신의 건강을 지켜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한 회장은 흩어진 민족종교들의 협의체를 1985년 창립해 30년 이끌어왔을 뿐 아니라 한국종교인협의회(KCRP), 종교지도자협의회 등을 통해 종교간 화합을 위해 힘쓰고 있다. 비록 민족종교의 위세가 약하지만 그의 흰 수염에 갓을 쓴 두루마기 차림은 모든 종교계의 상징처럼 보인다. 스스로의 마음자세를 다스리는 방편으로 갖춘 의관에서 한 회장의 기개가 엿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종교보다 타 종교 이해와 화합이 중요



한 회장은 지금도 청학동에서 의관을 갖추고 사서삼경을 낭독하며 사는 갱정유도회(更正儒道會)의 도정(道正ㆍ최고지도자)이기도 하다. 갱정유도회는 1945년 도조(道祖) 강대성이 유불선(儒彿仙)을 아우르며 예를 되찾기 위해 세웠다.

그러나 한 회장은 민족종교협의회를 창립되고 나서 30년 동안 기자들과 갱정유도회에 관해선 한마디도 안했다고 한다. 협의회장으로서 자신의 종교를 포교한다는 오해의 소지도 있지만 모든 교리가 ‘지상낙원, 인류평화와 상생’를 지향하는 것이며 그에 대한 공감대가 우선한다는 철학 때문이었다.

한 회장은 종교의 기본정신인 인류행복을 위해선 자기 교리만 내세우면 안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또한 비판도 삼갔다. 물론 이야기가 진행되다보니 은연중 ‘외래종교는 전도와 교세확장이 우선이며 겨레사랑은 두 번째’라는 속마음 드러냈지만 곧 ‘오프 더 레코드’를 요구했다. 자신의 종교신념은 갖되 ‘다름의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태도를 견지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서 공자와 노자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공자와 노자의 제자들은 서로 자기 선생만 옳다며 서로 서로 비판했다. 이에 두분을 모셔 놓고 승부를 가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공자의 제자들은 ‘노자가 깨질 것’이라 장담했고 노자의 제자들은 ‘공자가 박터질 것’이라 호언했다.

그러나 두분의 자리에선 온종일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았다.

제자들이 이상하게 여겨 자리가 파한 뒤 스승에게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도를 닦으려고 주유천하했는데 노자처럼 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노자는 “천하의 대성(大成)을 봤다”고 칭찬했다.

종교간 대화는 이렇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사서삼경과 음양오행 주역을 배워 도를 닦은 한 회장의 생각이다. 



겨레얼 살려 통일과 상생의 평화시대 열어야



한 회장의 직함은 많지만 그가 지니고 있는 명함은 민족종교협회장, 개신유도회 도정이 새겨진 것이 아니라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의 것이다. 이 단체는 2004년 “평화운동으로 우리 겨레의  유구한 정신문화를 계승 발전시키며, 인류평화 증진에 이바지한다”는 취지로 창립됐다. 우리 민족이 일제 36년, 해방 후 60여년 등 100년 동안 외래문물의 홍수 속에 겨레얼이 다 죽어 없어지고 남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워 8순의 나이에 창립한 것이다. 지난 6월에는 윷문화를 주제로 한 최초의 본격적인 학술세미나를 주최했는데 이 역시 겨레얼 되살리기의 일환이다. 우리 겨레 생활사에 있어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3대 발명이 있는데 주택에는 온돌, 음식에는 김치, 놀이에는 윷이라는 것. 윷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시키는 운동도 전개해 겨레얼을 고취시킬 계획이다. 이외에도 한 회장은 각급 학교ㆍ단체 등을 대상으로 겨레얼 살리기를 위한 전국 순회강연과 해외강연을 지속해 왔다. “우리는 평화민족으로서 상극의 시대를 물리치고 상생의 평화세계를 건설해야 할 책무가 있으며 통일도 겨레얼로 해야 한다”는 게 강연의 요지이다.

한 회장의 이러한 지론은 청년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5년 현충일에 갱정유도회원 500명을 서울로 불러 올려 '원미소용(遠美蘇慂) 화남북민(和南北民)'이라는 전단지를 뿌리며 시위하다 반공법 위반으로 구금됐었다. '미국ㆍ소련의 꾐을 멀리 하고 남북민이 화합하자'는 내용인데 민족도의(民族道義)로서 통일독립(統一獨立)을 해야한다는 주장이 담겨 있었다. 박 대통령 앞에 끌려간 그는 '미국을 멀리 하고 소련을 활용하자'는 내용이라며 올가미가 씌여 92일간 구금생활을 해야했다. 그러나 김팔봉·박종홍·유달영 선생 등의 권면으로 풀려났고 석방 뒤 박 대통령의 저녁 초대를 받아 갔더니 ‘미안하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에 다닐 때 쑥죽을 싼 도시락을 메고 30리 길을 가서 도시락을 열어보면 쑥건더기와 밥알 몇알밖에 없었는데 이를 지켜본 선생님이 몇 년동안 도시락을 싸줘 공부했다”며 그 때 “우리나라가 어떻게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는 것이다. 사범학교를 나온 자신이 '원미소용 화남북민'의 뜻을 모를 리 없었으나 갓쓰고 두루마기 걸친 선비를 과감히 구금함으로써 구태를 탈피해 보자는 의도였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박대통령은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50년 세월이 지난 올 3월 그는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의장 7명의 한 사람으로 청와대의 오찬해 초정돼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러한 일화를 들려주자 박 대통령 역시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한편 그는 지난 5월 이웃종교체험의 일환으로 러시아의 정교회를 방문했는데 고려인이 운영하는 한민족학교를 방문하는 동시에 러시아 종교지도자들에게 “한민족을 미국과 소련이 찢어 놓았다. 그러나 이제와서 시치미를 떼고 있으니 정치인들에게 결자해지를 하라고 하라”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



손양원 목사 등 사랑을 나눠준 진정한 종교인들



한 회장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오프더레코드’를 많이 강조했다. 타 종교와 인물 평가에 대해선 조심스러운 가운데 허심탄회한 자리 분위기를 깨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민족종교에 관해 논하면서 ‘과연 통일교도 민족종교에 들어가느냐’는 질문에 ‘민족적 기독교’라고 분명히 말하면서 그에 얽힌 일화는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했다. 다만 통일교가 창교하기 이전인 통일신령협회 때 문선명 총재와 그 제자 유효원씨가 한 회장의 강의를 듣고 주역의 음양원리와 기독교 성경을 조화시켜 원리강론을 저술했다는 것은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또한 문선명 총재의 장례식 때 경기도 가평의 천정궁에 1조원이 넘게 들었다는 자랑스런 이야기를 듣고, ‘그 돈을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쓰고 자신은 검소한 데 처했으면 얼마나 칭송을 받았겠느냐’는 말을 해주었다는 말도 쏟아 놓았다.

종교계의 산 증인으로서 한 회장이 쏟아내는 비화는 무궁무진했다. 일제시대 민족종교와 교주에 얽힌 이야기에서부터 그가 비서로 일했던 유교의 수장, 심산 김창숙 선생에 관한 이야기, 그가 접한 한국의 종교와 정치계를 이끌던 지도자에 대한 평가 등이 흥미진진했다.

그는 종교인 가운데 귀감으로 꼽는 분 가운데 하나는 손양원 목사였다. 손 목사는 1940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여수경찰서에 구금되었으며, 한센병 환자들을 위한 요양소였던 여수 애양원에 설치된 애양원교회에서 구호활동과 신앙활동을 펼치고,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의하여 총살된 인물로 ‘진짜 사랑을 베푼 진짜 목사’라는 평가다. 오늘날의 ‘사랑을 파는 종교’가 아닌 ‘사랑을 나누는 종교’를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문안교회의 강신명 목사는 설교에서 기독교를 초월해 사서삼경과 불경을 인용했는데 진리를 깨우쳐 주었다는 평가를 했다.

불교계에서는 효봉, 경봉스님에서 도를 느꼈으며 유교계에서는 심산 김창숙 선생에게서 선비의 참정신을 배웠다. 천주교의 노기남대주교, 김수환 추기경에게선 항상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선 사랑을 보았다고 했다.

참 정치인의 귀감으로는 세집에 살았던 변영태 전 국무총리, 노동운동가였던 전진한 초대 보사부장관, 일제 강점기의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김준연 초대 국회의원을 꼽았다.



한 회장과 세시간 동안 진행한 인터뷰 내용은 책 한권으로도 부족하다. 또한 일일이 밝힐 수 없는 비화도 많다. 또한 타종교와 사람의 비판을 삼간다는 소신을 지키켜야 했다.

그는 면목동 서일대 앞 사거리에 있는 사무실 옆 시골보리밥집으로 안내하기 전, 인터뷰 질문에 대한 답을 꼼꼼하면서도 완곡하게 정리해 주었다.

‘종교․정치지도자에 들려주고 싶은 말씀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옛 성인의 말씀에 선(善)이나 참은 아무리 적어도 취하고, 악이나 거짓은 아무리 커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미래를 가꾸는데 매진하시기를 다짐하시라”고 했다.

5년째 발행하고 있는 범종교신문을 자매지로 7월 창간된 매일종교신문에는 “남이 버린 곳에서 찾을 것이 있고, 남이 지난 곳에서 얻을 것이 있다는 진리대로 남이 버린 어둡고 허약한 곳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일문일답 全文>



▶종교평화에 대한 철학과 종교의 역할, 방향을 말씀해주십시오. 한국 종교계의 화합을 위해선 보수, 진보로 갈등을 보이고 있는 개신교계의 화합이 먼저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종교화합의 최대의 걸림돌이 개신교라는 겁니다. 민족종교를 보는 개신교계의 시각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남의 종교를 평가한다는 것은 종교인의 한사람으로서 어려운 말인데 상호조언을 한다면 예수님이 가르치신 사랑으로 회귀하는 일입니다. 사랑은 먼저 주는 것이지 먼저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주원리는 먼저 주고 뒤에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이 원리를 어기고 사랑을 강조하면서도 먼저 받으려고만 하지 먼저주려고 않기 때문에 사랑이 두절되고 병폐가 생기는 것이죠.

    

▶ 민족종교를 탄압하기 위해 일제 강점기에 씌운 민족종교에 대한 폄하가 해방 이후에도 ‘유사종교’, ‘사이비종교’라는 낙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이런 영향을 받은 기성 종교들에 의해 그런 평가가 없지 않습니다. 이에 대한 민족종교의 대응자세는 어떠해야 됩니까?  



- 일제가 36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하면서 외래종교인 기독교, 불교, 유교, 천주교 이 4개종교만 종교라 하고 우리나라에서 자생한 민족종교를 모두 사교라 하였는데, 그 이유는 3.1운동과 임시정부를 주도했을 뿐만 아니라, 만주 땅에 11개 학교를 건립하였으며, 많은 독립자금을 임시정부에 보냈기 때문입니다. 해방 후에도 일제에 참여했던 관료들과 학자들이 계속 이어져 선두에서 역시 우리 민족종교를 사교시 하였습니다. 옛 말씀에 잘난 사람은 ‘악(惡)7선(善)3’, 못난 사람은 ‘선7악3’이라 했는데, 민족종교은 모든 면에서 기성종교보다 부족함이 많고 세력도 부족합니다. 종교 본질대로, 하느님 가르침대로만 가면 이것이 진실한 종교인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 현재 민족종교의 종단은 200여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민족종교협의회 안에는 10여개 이사종단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아직 민족종교의 위상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한 회장님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 민족종교의 위상이나 내가 하고 있는 역할 같은 것을 계산하기 이전에 현재 우리사회의 각 분야가 본질대로 가지 못하고 이탈해 혼돈 혼란에 빠져 헤매는 이때에 어떻게 하면 우리 민족종교만이라도 또한 나만이라도 우주원리의 순환과정에 왔다가 가는 순간에 우주원리대로 수행할 것인가에만 몰입하고 있습니다. 민족종교인 모두가 우주원리를 교화하신 교조님의 가르침대로 순리대로 가자는 생각이외에는 없습니다.

    

▶ 민족종교의 공통점은 후천선경(後天仙境)의 건설에 있고, 우리민족이 그 주역을 담당하고 한반도가 그 중심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타 종교의 이념과 배치되는 면은 없을까요?

   

- 순환무단(循環無斷)한 우주원리는 서양의 숙살지운(肅殺之運) 때문에 세계가 상극과 전쟁, 황금만능으로 혼돈에 빠졌습니다. 세상 만사는 운(運) 아님이 없다고 합니다. 그 운이 서양에서 춘생하장(春生夏長)하는 동양으로, 동양에서도 한반도로 돌아와 상생과 평화 도덕문명으로 한반도가 세계중심이 되어서 이끌고 가게 됩니다. 우주원리가 그러하거늘 어찌 다른 종교들이라고 해서 인위적으로 천리를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오직 인간은 천리를 따를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다만 격암 남사고 선생은 500년 전에 ‘만국인이 우리 마당에 와서 벌거숭이로 춤을 추면 천하대운이 우리나라로 온다’고 했습니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무진년을 원년으로 볼 수 있습니다. 4320년 전 무진년은 단군께서 이 나라를 연 개국의 해였습니다. 동의보감에도 나타나지만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이듯이 천지도수는 4320년마다 변화가 옵니다.

남사고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에선 중국은 50개국으로 나뉘고, 일본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고 돼 있습니다. 한국은 1천번의 외침을 받고도 남을 침략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하늘이 그런 나라에 상생 평화시대의 대임을 맡긴다는 것입니다.

  

▶ 통일교 원리강론에는 음양이론이 들어있는데, 한때 통일교에서 주역강의를 한 한 회장님께서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통일교 역시 기독교라기보다는 기독교 교리를 융합한 민족종교라 보면 어떤지요. 저희 신문에선 통일교나 원불교를 민족종교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 통일교가 창교하기 이전인 통일신령협회 때 돌아가신 문교주님과 그 제자 유효원 씨와 오랜 기간 주역에 대한 논지답지가 있었는데 그 후에 주역의 음양원리와 기독교 성경을 조화시켜 원리강론을 저술한 일이 있지요. 그래서 그 뒤에 통일교는 민족적 기독교라고 일부에서 말하곤 했지요. 그리고 어떤 종교라도 교주가 우리 민족이고 교리가 우주원리에 입각하고 미래가 우주진리 대로라면 민족종교로 간주합니다.

   

▶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65년 현충일에 ‘원미소용, 화남북민(遠美蘇慂, 和南北民)’이란 전단을 뿌려 옥고를 치르신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한 소신은 여전히 갖고 계시는지요? 그리고 남북평화통일과 국가 비전에 대해 말씀해주십시오.

    

- 1965년 6월 6일 현충일에 전국에서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갱정유도 도인 500여명이 서울에 모여 미국과 ‘소련의 종용을 물리치고 (遠美蘇慂) 남북민이 화하자(和南北民), 민족도의(民族道義)라야 통일독립(統一獨立)된다’는 전단 30만 매를 시경 뒤편 청구인쇄소에서 인쇄하여 당시 9개구에 500명이 분산하여 시민들에게 나눠주는데 박정희 대통령께서 국립묘지 행사에 다녀오시면서 도포를 입고 갓을 쓴 사람들이 길가에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무슨 삐라를 전한 것을 보았다. 청와대로 돌아오셔서 길가에 나가 무슨 전단인지 가져오라 하시고 주모자를 데려오라 하시니 그때 주동자로 본인을 청와대로 끌고가서 따라갔다.

대통령이 계시고 부하들 몇 분이 있는 데에서 전단을 읽어보라고 해서 “원미소용 화남북민”-‘미국과 소련의 종용을 멀리하고 남북민이 화하자’고 읽으니 대통령은 “뭐라고? 미국은 멀리하고 소련에는 종용당해주자는 말이냐”고 하시면서 끌고 가라고 하시어 구속되었다. 92일 만에 김팔봉 안호상 조경한 유달영 함석헌 선생들이 나서주셔서 석방되었지요. 석방 된 15일 만에 다시 청와대로 오라는 연락이 있어서 갔더니 그때는 대통령이 현관에 나오셔서 “어서 오시오” 하며 악수를 청하시면서 “안으로 갑시다” 하시기에 따라 들어가니 밥상을 차려놓고 식사를 권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오해하였으니 이해하시고 앞으로 힘을 합하여 국가발전을 시키자”라고 하시며 따뜻한 말과 정을 주신 것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 외쳤던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북한 사람들을 만날 때면 언제 우리 민족이 나라를 갈라놓고 민족을 찢어왔는가? 강대국들이 냉전이란 말로 강토를 갈라놓고 민족을 갈기갈기 찢어놨으니 하루속히 정신 차리고 유구한 우리역사, 찬란한 우리 문화, 위대한 우리건국이념, 이 아름다운 민족도의를 앞세우고, 통일은 우리민족의 통일이지 강대국들의 통일이 아니니 하루속히 민족의 원수가 아니고 같은 형제, 오직 한민족으로서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 지난 6월엔 민족종교협의회 주최로 윷문화주제 세미나를 개최하셨습니다. ‘윷엔 고대 천문학과 우주관이 담겨있다’라고 하셨는데, 겨레얼 살리기 차원에서 윷의 의미를 듣고 싶습니다.

    

- 윷 속에는 오행의 우주원리가 들어있고, 하늘의 운행도수와 역법이 들어있습니다. 동방의 작은 나라 코리아에서 전해진 윷판과 윷가락을 보고 외국사람 컬린은 ‘인류 놀이의 원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한마디 말은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하게 해주면서, 공감과 영감을 줍니다. 도대체 우리는 윷에 대해 무엇을 했었나요? 조선시대는 아이나 부녀자들의 놀이로 무시하지 않았던가요? 바둑이나 장기는 즐겨 두면서, 윷이 가진 오랜 역사나 깊은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선각자들은 100여년 전부터 윷에 대해 그 깊은 의미를 탐구해서, 민족을 구원할 도리를 윷판에서 찾았습니다. 민족종교의 교리를 보면, 그 속에는 당시 고난에 허덕이던 우리 민족의 앞길을 여는 이치를 밝혀놓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라져가는 윷문화를 복원하는 일이 겨레얼을 되찾는 일입니다. 윷의 세계화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먼저 할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만, 이제부터 한걸음 한걸음 윷문화의 계승과 보급을 위해 힘써야할 것입니다. 이것을 밑걸음으로 삼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 등재운동도 전개할 계획입니다.

    

▶ 주역의 대가로서 역대 대통령을 다 만나보셨고, 많은 종교계 지도자들과도 교류하셨는데 이분들에 대한 평가와 들려주고 싶으신 일화를 말씀해주십시오.

    

- 물론 초대 이승만 대통령부터 역대 대통령 다 만나고 모시고 살아왔지만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짧은시간에 다 말할 수 없고 명색이 종교인으로서 우선 불교계 효봉스님, 경봉스님을 높이 사게 됩니다. 수차 모시고 배울 때, 마음을 다 비우고 하시는 설법과 행하심 그리고 그 크신 학덕은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도(道)였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기독교계에는 여수 소록도에서 나환자들과 같이 먹고 자고 생활하다가 결국 나환자가 되어 돌아가신 손양원 목사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몇 번 뵈는 가운데 그분이 아무 말씀을 안하셔도 그 행동에서 자연히 “아 저것이 사랑이로구나” 생각이 됐급니다.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는 ‘저분이 정말 기독교 목사가 맞는가?’ 할 정도로 모든 종교를 초월해 말씀하셔서 감명받았습니다. 기독교 성경 뿐 아니라 사서삼경, 불교서적에서 박문박식일 뿐 아니라 그를 모두 인용해 설교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아, 저것이 진리구나’라고 감탄하던 것이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천주교에 노기남대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항상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서 힘이 되어주고 대변해주신 것을 보고 “아, 저게 사랑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유교에선 김창숙 선생을 꼽습니다. 독립운동하시다가 15년 옥고를 치루시면서 한쪽 다리가 썩어서 상실하고도 불의를 보시면 파사현정의 정신으로 앞장서신 것을 보면 “아 선비의 참정신이 저거로구나” 하고 생각이 듭니다.

이외에도 훌륭한 종교지도자가 많지만 시간관계상 생략하고 독립운동가 한분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백강 조경한 선생의 비화가 많지만 한 예만 들겠습니다.

제가 이 분을 30여 년간 가까이 모셨는데 하루는 저희 집으로 전화를 하시면서 자동차 빌려오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고 그 때 막 나온 포니차를 친지 한사람에게 부탁해 함께 끌고 간 적이 있습니다.

중곡동 선생님댁으로 가보니 방범대원이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 그 차를 4인이 타고 안성 어느 시골마을 외딴 집에 도착했습니다. 방 한칸에 부엌 한칸집인데 방 앞에는 마루도 없고 부엌문에 가마니를 걸어놓은 아주 초라한 집이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같이 간 방범대원더러 마침 늦은 가을이라서 앞집에 가서 벼짐 한단만 얻어오라고 해서 방 앞 흙마당에 깔고 앉았습니다.

이 때가 늦은 가을 오후 5시경 되었는데 선생님 눈에 눈물이 도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 집이 나의 둘째 자식놈 집이네”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임시정부에 가서 일을 할 때 국내 있는 가족들을 일제가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정신병자가 됐는데, 이놈이 돌아다니면서 민폐를 끼친다기에 데리고 가서 정신병원에 넣어두려고 데리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날이 어두워지니까 그 아들이 집에 왔고, 들어오자마자 차에 태우고 중곡동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하신 말씀이 “나라를 위한다는 것이 결과가 이렇다”고 하셨습니다. 그 때 ‘애국이 바로 이러는 것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정치 쪽에 위대한 세분만 말씀드린다면 자유당 때 고려대교수를 하시다가 국무총리를 하신 변영태 선생입니다. 영어를 배우지 않고도 논어를 영역하였으니 가서 책을 보려고 북아현동 세집에 살고계신 곳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친구와 같이 갔는데 ‘아무 동지에게 준다’는 사인을 하시려고 연필을 깎으시는데 연필대를 내리 깎으시는 것이 아니고 끝에서부터 위로 비켜 올려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제가 깎아드리겠습니다” 하니, “이 연필은 다른 사람은 못 깎고 나만이 깎는 연필이야. 이 속의 흑연이 수입이야. 수입해 온 이 흑연을 반 이상 깎아버릴 수 없지 않은가? 글씨는 내 뜻을 전달하면 돼” 하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애국이 바로 이런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란 것을 배웠습니다.

우리나라 초대 보사부장관이신 전진한선생은 노동운동가이신데 이분을 존경하고 따라다니면서 보면 일류 신사이시면서 당신이 입은 양복이 몸에 딱 조일 뿐 아니라 소매는 팔만 들어가고 바지는 홀대바지니 품위가 없었습니다. “선생님 옷을 좀 품위가 있게 하시면 어떠실까요?”하면, “이 사람들아, 이 양복기지가 다 수입품인데, 이를 간소화하면 국민 두사람이 입는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아 애국 이것이 애국이로구나”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제일 학벌이 좋다고 하시던 낭산 김준연 선생이 고향 영암에서 출마하셨는데 이때 선거사무장이 제 선배로서 선거운동을 도와달라고 하시기에 가서 도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때 초등학교 교정에서 합동유세를 마치고 나오시는데 학생들 50여명이 선생님에게로 몰려와서 에워싸면서 선생님에게 “학교정문 앞에 다리 보이지요.저 다리가 목(木)다리로서 비만 오면 떠내려가고 그러면 학교를 못 옵니다. 그러니 선생님 회(灰)다리 하나 놔 주세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래라’ 하지 않고 “아가들아 저 다리는 면장님이나 군수님이 놓는 것이지 국회의원 놓은 것이 아니니 너희 부형들이 면장님이나 군수님 찾아가서 얘기하라”하고 사무실로 돌아오셨습니다.

우리 선거원들은 아이들에게 ‘그래라’ 한 말씀만 했으면 150표는 얻는데 표를 쫓고 어떻게 당선되겠느냐고 원망을 하였습니다. 이에 선생님은 “한사람 당선이 중요한가? 장차 이 나라를 책임지고 나갈 저 애들이 바르게 배우는 것에 중요한가? 저 아이들을 바로 가르쳐야 나라의 장래가 희망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씀에 또 한번 애국의 진리를 배웠습니다.

    

▶ 이 시대의 종교지도자, 정치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 모든 분야의 지도자나 정치인에게 굳이 한 말씀 드린다면 옛 성인의 말씀에 선(善)이나 참은 아무리 적어도 취하고, 악이나 거짓은 아무리 커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진실한 마음으로 진실한 미래를 가꾸는데 매진하시기를 다짐 하자는 것입니다. 

    

▶ 끝으로 각 종교의 진정성을 두루 살펴 보고 이해함으로써 각 종교와 사회의 화평과 상생, 조화를 이룬다는 취지를 갖고 있는 저희 신문에 바라는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 아무쪼록 바라옵건데 남이 버린 곳에서 찾을 것이 있고, 남이 지난 곳에서 얻을 것이 있다는 진리대로 남이 버린 어둡고 허약한 곳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 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의 창립유래와 비화

단군전 건설에 대한 기독교 반대에 대응



한국민족종교협의회는 1991년 12월 18일 설립된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사단법인이다. 민족종교 상호간의 화합과 유대를 증진시키며, 민족종교의 근본이념을 바탕으로 올바른 가치관을 제시하고, 문족문화의 창달과 민족정신의 선양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사업으로는 ▲회원교단 상호간의 유대와 이해증진 및 발전 ▲민족주체사상의 확립과 도덕사회 구현 ▲민족종교 사상의 학술연구 ▲사회복지 및 구호사업 등이 있다.
<p style="TEXT-ALIGN: justify; LINE-HEIGHT: 160%; TEXT-INDENT: 0px; MARGIN: 0px; FONT-FAMILY: '돋움'; COLOR: #000000; FO
테스트의 다른기사보기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기사하단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URL 복사
x
  • 위에의 URL을 누르면 복사하실수 있습니다.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데모300.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