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기사상단

범종교 視角●순수한 단상에 군더더기 붙인 칼럼과 ‘참 모습, 참 삶’에 군더더기 붙인 종교

가 -가 +

테스트
기사입력 2013-08-14

범종교 視角●하늘소풍길 斷想 4

 

순수한 단상에 군더더기 붙인 칼럼과

‘참 모습, 참 삶’에 군더더기 붙인 종교

 

▶ 대모산 산책을 하며 지난 봄부터 ‘하늘소풍길’이라 이름 붙이고 매주 페이스북에 올린 단상이 15개이다. 일주동안 쌓였던 주독(酒毒)과 번거로운 일상들을 떨쳐버리려는 산책에 굳이 ‘하늘소풍길’이라 명명한 것은 ‘하늘님’ - ‘대자연과 우주’에 대한 내 생각들을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은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스마트폰 조그만 자판으로 사진과 함께 담아 정리한 단상은 짤막하다. 그러나 심신을 힐링한 후에 쓴 덕분인지 술독, 담배독, 일의 피로 등을  모두 씻어 주었다.

 

▶ 그 단상에다 내가 읽은 책과 기사 내용들을 엮어 쓴 칼럼이 3개이다. 단상에 격식을 갖추어 보충함으로써 내 상념들이 정돈되며 독자들에게도 쉽게 읽힐 것이란 생각에서 쓴 칼럼들이다. 그러나 다시 칼럼을 읽다보면 군더더기란 생각이 든다. ‘어거지’로 꿰 맞춘 느낌도 든다. 숲속 단상의 순수함을 세상 속 지식과 포장으로 훼손시킨 것 같다.

 

▶ 더 이상 ‘하늘소풍길 단상’이란 칼럼을 쓰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나의 네 번째 칼럼은 조심스럽다. 결국 나의 지난주 대모산 단상을 그대로 전재해 놓고 칼럼을 작성해봄으로써 순수한 단상이 얼마나 왜곡되었는지, 아니면 명상의 깊이를 더했는지 스스로 평가하고, 평가받고 싶어졌다. 대개 자신이 하는 행위들은 바로 평가하기 어려우며 객관적인 지적을 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하늘 소풍길 단상은 다음과 같다.

 

▶매미소리는 노래일까? 울음일까? 새는 노래(Birds sing)하는 것일까? 우는 것일까?

한여름 숲속 매미소리가 경쾌하다. 가로수 매미소리가 간혹 소음(noise)으로 매도되긴 하지만 나에겐 싱싱한 사운드(sound)이다. 유충 17년 세월 끝에 성충 매미로 한달의 삶을 사는 매미가 한없이 삶을 노래하는 소리라 느끼기 때문이다.

매미소리는 암컷을 부르는 수컷의 교미(交尾)음이라 한다. 때론 질투음이 있고 사람 접근에 두려움을 나타내는 공포음도 있다고 한다. 매미의 희노애락이 담긴 소리인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모두 삶을 불태우는 아름답고 열정적인 노래로 들린다.

나도 매미처럼 세상의 희노애락에 일희일비하며 갖가지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웃음소리, 울음소리, 비명소리, 흥겨운 노래소리, 불만의 소리, 환희와 절망의 소리… 그러나 대자연과 우주는 사람의 희노애락 표현 모두를 즐거운 노래소리로 받아들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매미의 희노애락  모두를 경쾌한 노래로 여기듯이 말이다.

숲속 벤치에 누워 그러한 생각을 해보니 은근히 내가 도를 통했다는 느낌이 든다. 도통했다는 뿌듯함에 낮잠을 청하려니 모기가 극성이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매미와 마찬가지로 길어야 한달 삶을 사는 모기도 나름 희노애락을 모두 겪을텐데 모기소리는 모두 귀찮은 ‘noise’로 들린다.

모기가 저음(低音)으로 노래한다고 느끼며 살 수 없을까? 그러러면 아무래도 모기를 피해 하산해야 할 것 같다.

 

▶ 나는 이 단상에다 최근 접한 두 책의 내용을 엮어 내 상념을 보충한 칼럼을 쓰려 했다. 4대종교부터 무속․ UFO교까지 종교 쇼핑 통해 ‘나에 맞는 신’을 편력한 책 ‘신을 찾아 떠난 여행’(에릭 와이너 저)과 세명의 페이스북 친구가 ‘붓다를 버린 불교, 예수를 추방한 기독교, 공자 말씀에 귀를 닫은 유교’에 대해 이야기한 3인 3부작 ‘슬픈 붓다’ 슬픈 예수’ ‘슬픈 공자’가 바로 그 책들이다. ‘신을 찾아 나선 여행’은 자신의 마음을 치유해 줄 종교를 찾으러 세계일주를 떠나 만난 종교에 대한 인상과 여정의 기록이 담겼다. 어느 종교든 나름의 매력이 있으니 자신에 어울리는 종교를 쇼핑하라는 것인데 나는 내 나름대로 하늘소풍길에서 대자연과 우주에 어울리는 종교를 쇼핑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었다. 또한 붓다, 예수, 공자의 실제 삶에서 ‘우상’ 아닌 ‘참모습’을 찾고자 한 3인 3부작에서는 ‘붓다, 예수, 공자도 슬퍼하는 종교현실’에 공감을 표시하며 ‘우리 내면에 있는 근본적 종교심을 회복해야 한다’는 내 주장을 펴고 싶었다.

 

▶ 그렇다면 내 주장이 과연 내 순수한 단상을 숙성시킨 것이라 할 수 있을까? 군더더기에 지나지 않는 표현을 덧붙인 것은 아닌가? 마찬가지로 순수한 사랑과 자비심, 도(道)를 온갖 말씀과 형식으로 보충한 종교가 과연 숙성된 종교라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권위와 우상이란 군더더기가 붙은 것이 현재의 종교인가? 선과 악, 좋고 나쁨, 좋은 종교와 사이비종교 모두가 참 신앙과 참 삶의 눈으로 보면 모두 같은 종교이진 않을까. 내가 온갖 매미소리를 노래로 듣듯이, 대자연과 우주가 사람들의 온갖 희노애락 표현을 매한가지 모두 같은 노래로 듣듯이 말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band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기사하단
댓글

i

댓글 수정 및 삭제는 PC버전에서만 가능합니다.

많이 본 뉴스

최신기사

URL 복사
x

PC버전 맨위로 갱신

Copyright ⓒ 데모300. All rights reserved.